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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를 엑스박스 패드로 끝까지 했습니다. 명작이라는 말은 이미 다들 하고 계시니 저는 다른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 게임 살까 말까 고민하시는 분들이 제일 궁금해하는 게 "내가 이걸 깰 수 있나"일 텐데, 여기에 대해서는 리뷰들이 좀 두루뭉술하더군요.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액션을 잘한다고 되는 게임이 아닙니다.

 

액션 실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게임은 턴제인데 패링이 있습니다. 적이 공격할 때 타이밍에 맞춰 버튼을 누르면 막고 반격까지 들어갑니다. 반대로 놓치면 그대로 맞습니다. 턴제 RPG에 소울라이크 반응 요소를 붙인 셈입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액션 게임 좀 해봤으면 되겠네" 싶으실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소울라이크는 적의 모션을 보고 반응하는 게임입니다. 칼을 드는 게 보이면 준비하고, 휘두르는 순간 굴리면 됩니다. 시각적 단서가 있어요. 그런데 이 게임은 박자를 외우는 게임에 가깝습니다. 공격 모션이 시작되고 실제 타격까지의 간격이 적마다 다르고, 그 간격이 눈으로 잘 안 읽힙니다. 그래서 반사신경이 좋아도 처음 보는 패턴은 그냥 맞습니다.

 

게다가 엇박이 심합니다. 3연타처럼 보이는데 두 번째와 세 번째 사이만 간격이 미묘하게 길거나, 같은 모션인데 어떤 보스는 더 빠릅니다. 후반으로 가면 겉모습이 비슷한 적인데 패턴이 하나 더 붙어 있는 경우도 나옵니다.

 

익숙해졌다고 방심하면 그때 죽습니다.

 

저는 보스 하나에 100번 넘게 죽은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실력이 늘어서 깬 게 아니라, 그 보스의 박자를 외워서 깬 겁니다. 다음 보스에서는 다시 처음부터 외워야 했고요.

 

그래서 이렇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액션을 못해서 못 깨는 게임이 아니라, 잘하는 사람도 못 깰 수 있는 게임입니다. 필요한 건 반응 속도가 아니라 죽는 걸 견디는 인내심입니다. 이걸 모르고 사면 초반에 접습니다.

 

그런데 그 구조가 이 게임의 재미이기도 합니다

 

깎는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저는 이 부분이 이 게임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패링이 성공하기 시작하면 전투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스펙 차이가 나는 적도 한 대도 안 맞고 잡을 수 있는 구조라서, 한 번 박자를 익히면 아까까지 나를 죽이던 보스를 가지고 놀게 됩니다. 이 낙차가 엄청납니다. 100번 죽은 게 아깝지 않아지는 순간이 옵니다.

 

레벨 노가다로 뚫는 것도 가능합니다. 원정대 깃발에서 스탯을 올리고 무기와 스킬, 픽토스를 조정할 수 있는데, 이걸 파고들면 딜로 밀어붙이는 빌드도 나옵니다. 파티원 간 스킬 연계가 덱빌딩처럼 촘촘해서 조합 짜는 재미도 있고요. 그러니까 패링이 도저히 안 되면 다른 길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다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길로만 가면 이 게임의 절반은 못 느낍니다. 이 게임은 패링이 되기 시작할 때부터 진짜입니다.

 

한 가지 실용적인 조언을 드리면, 패드로 하시길 권합니다. 저는 엑스박스 패드로 했는데 타이밍 잡는 데 확실히 유리합니다. 그리고 새 보스를 만나면 처음 몇 번은 이길 생각을 버리고 패턴만 보세요. 저는 이걸 늦게 깨달아서 초반에 헛되이 죽은 게 많습니다.

 

조작감 자체는 좀 뻑뻑합니다. 특히 필드에서 캐릭터 움직임이 매끄럽지 않아서, 정교한 조작이 필요할 때 긴장하게 됩니다. 월드맵에 방문 표시나 핀 기능이 없는 것도 불편했습니다. 미니맵을 안 넣은 건 탐험의 재미를 위한 선택으로 이해하지만, 핀 정도는 있었으면 싶었습니다.

 

그래도 해봐야 하는 게임입니다

 

여기까지 읽고 망설여지실 수도 있는데, 저는 이 게임을 추천합니다. 힘들었지만 끝내고 나서 남는 게 확실히 있었거든요.

 

세계관이 특히 좋았습니다. 프랑스 벨 에포크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데, 건축 양식과 복장, 소품 하나하나가 그 시절 분위기를 담고 있습니다. 게임 안에 에펠탑이 등장하고, 인상주의 화가 이름에서 따온 듯한 인물도 나옵니다. 가본 적 없는 시대를 걷는 느낌이 듭니다.

 

OST는 이 게임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부분인데, 과장이 아닙니다. 메인 화면 음악부터 범상치 않고, 전투곡이 열 곡 넘게 준비되어 있어서 수십 시간을 해도 질리지 않습니다. 턴제 게임에서 전투 BGM 몇 곡을 계속 듣다 지치는 경험을 해보셨다면 이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아실 겁니다. 100번 죽으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음악이었습니다.

 

연출도 인상적입니다. 별것 아닌 대화 장면에서도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표정 근육까지 잡아냅니다. 성우 연기와 맞물려서 감정이 그대로 전달됩니다. 소규모 개발사가 만든 게임이라는 걸 생각하면 더 놀랍습니다.

 

정리하면

 

추천: 죽으면서 배우는 걸 즐기시는 분. 턴제 RPG가 지루하다고 느꼈던 분. 세계관과 음악에 비중을 두시는 분. 시간을 충분히 쓸 수 있는 분.

 

비추천: 스트레스받으면 게임을 접으시는 분. 짧은 시간에 진도를 빼고 싶으신 분. 반복 시도 자체를 못 견디시는 분.

 

정리하면, 이 게임은 명작이 맞습니다. 다만 "명작이니까 누구나 재밌게 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100번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만큼 돌려주는 게임이고, 그게 부담스러우시면 세일 때 사서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저는 힘들었지만 하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50시간 엔딩 후 솔직한 클레르 옵스퀴르 33원정대 리뷰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9900KYFsRCE

이미지 출처: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 공식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