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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노 117: 팍스 로마나를 직접 해봤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잘 만든 게임인 건 확실합니다. 다만 저는 아노 1800이 더 재밌었고, 그 이유가 꽤 분명했습니다. 이 글은 전작을 해보신 분, 그리고 무역보다 도시 짓는 재미로 아노를 하시는 분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잘 만든 건 맞습니다
먼저 인정할 부분부터. 로마 제국을 소재로 이만한 완성도를 뽑아낸 건 대단합니다.
이번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두 개 지역을 오가는 구조입니다. 로마 본토인 라티움과 켈트족의 땅 알비온을 번갈아 운영하게 되는데, 두 곳의 성격이 확실히 다릅니다. 라티움은 지중해 특유의 넓은 들판에 석조 건물, 극장, 목욕탕을 올리는 전형적인 로마식 대도시를 짓는 무대입니다. 포도주, 올리브유, 고급 토기 같은 생산품이 상류층 요구를 채웁니다.
알비온은 습지와 바위가 많은 켈트 지역이고, 여기서는 켈트 전통을 존중할지 로마 문화를 이식할지 직접 고르게 됩니다. 이 선택이 생산품과 건설 구조, 주민 반응까지 바꿉니다. 섬마다 수호신을 정해 생산량이나 행정 효율에 버프를 받는 신앙 시스템도 들어가 있습니다.
연구 시스템도 새로 생겼습니다. 전작은 인구가 늘면 기능이 열리는 방식이었는데, 이번엔 연구 기관을 통해 건축, 농업, 행정, 항해, 군사를 따로 찍습니다. 섬마다 전문화된 생산 라인을 짜는 게 가능해졌고, UI도 공유 창고나 도로·창고 위치에 따른 생산 효율을 보여줘서 전작보다 파악이 빠릅니다.
전투도 붙어 있습니다. 해상전은 무역로를 지키는 용도로 비중이 꽤 크고, 지상전은 군단 보병, 궁수, 기병, 공성병기가 지형과 진형에 따라 다르게 작동합니다. 다만 전투는 어디까지나 보조입니다. 병력을 뽑으려면 인구와 자원, 유지비가 받쳐줘야 해서 결국 도시 경영이 먼저입니다. 저처럼 전투에 관심 없는 사람도 크게 부담 없이 넘어갈 수 있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공략을 켜놓고 해야 합니다
여기서부터가 제가 아쉬웠던 지점입니다. 이 게임은 혼자 감으로 시작하면 거의 확실하게 막힙니다.
가장 큰 이유는 초반부터 다른 대륙 물품을 주민이 요구한다는 겁니다
. 전작 아노 1800은 생산 체인이 천천히 넓어졌습니다. 한 섬에서 자리를 잡고, 여유가 생기면 다음 섬으로 나가는 흐름이었죠. 그런데 117은 시작하자마자 라티움과 알비온을 오가는 물류를 짜야 합니다. 알비온에서만 나오는 낙농품과 치즈가 라티움 상류층 요구에 걸려 있어서,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개발사는 진입 장벽을 낮췄다고 했는데, 저는 반대로 느꼈습니다. 전작보다 초반에 신경 쓸 게 더 많습니다. 그래서 결국 공략을 띄워놓고 하게 됐습니다. 어떤 생산 건물을 어느 섬에 지어야 하는지, 무역선을 몇 척 돌려야 하는지 미리 알고 시작하지 않으면 중반에 물류가 꼬여서 도시가 멈춥니다.
알비온 건설도 만만치 않습니다. 습지와 바위 때문에 쓸 수 있는 땅이 조각조각 나 있어서, 라티움에서 쓰던 배치를 그대로 못 가져갑니다.
저는 여기서 짓고 부수기를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문제는 이게 창의적인 설계가 아니라 지형 피해 다니기라는 겁니다. 전작에서는 섬 지형을 어떻게 활용할까가 고민이었다면, 여기서는 어디에 지을 수 있나부터 찾아야 합니다.
두 지역을 오가는 이동 시간도 체감상 깁니다. 라티움에서 뭘 하다가 알비온 상황을 확인하러 넘어가면 흐름이 한 번씩 끊깁니다.
심시티만 해도 되는 게임인가
솔직히 말하면 저는 무역을 거의 안 했습니다. 도시 짓는 재미로 아노를 하는 편이라, 이번에도 심시티하듯 건물 배치하고 도시 키우는 데 시간을 다 썼습니다.
이렇게 즐기는 게 가능하긴 합니다. 전투는 필요할 때만 들어가면 되고, 라티움에서 로마식 도시를 올리는 과정 자체는 충분히 만족스럽습니다. 건물 모양도 예쁘고, 도시가 커지는 맛도 있습니다.
다만 한계가 분명합니다. 무역을 소홀히 하면 상류층 요구를 못 채우고, 그러면 인구가 안 늘고, 결국 도시 확장이 막힙니다. 전작에서는 한 섬만 파도 꽤 오래 버틸 수 있었는데 117은 그게 안 됩니다. 심시티만 하고 싶어도 어느 시점부터는 강제로 물류를 만져야 합니다.
그래서 아노 1800과 비교하면 이렇습니다. 1800은 내가 하고 싶은 방식대로 놀아도 게임이 따라와 줬습니다. 117은 게임이 정해놓은 순서를 따라가야 합니다. 시스템은 117이 더 정교한데, 노는 자유도는 1800이 위였습니다. 제가 전작을 더 재밌게 한 이유가 이겁니다.
이런 분에게 추천합니다
추천: 공략 보면서 하는 게 익숙하고, 복잡한 물류 짜는 걸 즐기는 분. 로마 배경 도시를 지어보고 싶은 분. 아노를 처음 접하는데 시간을 충분히 쓸 수 있는 분.
비추천: 설명서 안 보고 감으로 시작하고 싶은 분. 한 섬 파면서 느긋하게 도시만 키우고 싶은 분. 아노 1800의 자유로운 느낌을 그대로 기대하는 분.
정리하면 잘 만든 게임인 건 맞고, 시스템도 전작보다 발전했습니다. 다만 그 발전이 플레이어에게 더 많은 걸 요구하는 방향이라, 전작이 더 편했다고 느끼는 사람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그쪽이었습니다. 아노를 처음 하신다면 오히려 117로 시작하는 게 나을 수도 있는데, 대신 공략 하나는 띄워놓고 시작하시길 권합니다.
[출처] 해외에서 극찬을 받은 전략 경영 게임 "아노 117: 팍스 로마나" 플레이 후기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fUnF1A_34Nw
이미지 출처: 아노 117: 팍스 로마나 공식 페이지
